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단독] 시진핑이 감추려 해도...'3·1운동이 중국 5·4운동 자극' 입증 문헌 나왔다

"조선인들은 참으로 피를 흘리고 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조선인에 대해 온몸을 땅바닥에 던질 정도로 경의를 표한다. (쉬더헝,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 中)" 1919년 일제 치하 한반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 소식은 곧바로 중국 베이징까지 전해졌다. 중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식인과 학생들이 모인 베이징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근대적인 국민의 삶을 계몽하고 열강의 간섭에 저항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 앞에서 번뇌하던 중국 지식인·학생들은 식민지배를 받던 이웃나라 조선의 민중투쟁에 주목했다. 3월부터 5월까지 3·1운동의 전개 과정을 낱낱이 보도했고, 기미독립선언서 전문까지 소개하며 높게 평가했다. 두 달 뒤인 5월 4일 베이징에서 5·4운동이 일어났다. 주도 세력은 3·1운동을 찬탄한 지식인·학생들이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학생 3,000여 명이 모여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동맹 휴학과 사상운동인 신문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중국 대중이 성장하고 청년·학생 운동이 확산하는 등 민중의 개혁과 각성으로 이어진 5·4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중국사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중국은 3·1운동과 5·4운동의 연결고리를 지웠다. 10여 년 전까지 한국과 중국 학계는 3·1운동이 5·4운동에 중요한 기폭제였다는 것에 공감했지만,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서 '자국 중심주의'가 심화하면서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2기인 2017년 중국은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했는데, 일반고교 역사교과서 '중외역사강요'는 5·4운동을 한 챕터에 걸쳐 비중 있게 다루면서도 3·1운동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일보는 3·1절 105주년을 맞아 중국의 5·4운동 주역들이 3·1운동을 격찬하고 중국인들의 저항을 호소한 문헌 자료를 입수해 언론을 통해 최초로 공개한다. 중국의 주변국 역사 축소를 반박하는 직접적인 증거다. 5·4운동은 천두슈(陳獨秀)로 대표되는 베이징대 교수진의 지원 아래 푸스녠(傅斯年), 천조우주(陳兆疇), 쉬더헝(許德珩) 등 베이징대 학생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1919년 3월부터 5월에 거쳐 3·1운동을 근거로 중국인의 궐기를 추동하는 글을 신문과 잡지에 다수 남겼다. 이들은 "고려인들의 거사를 보면서 다시 중국의 상황을 돌아볼 때, 참으로 부끄럽다"(신무 '부끄럽구나')며 중국의 상황을 성찰했고, 3·1운동을 "민중의 뜻만을 사용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혁명의 신기원을 열었다"(천두슈, '조선 독립운동에 대한 감상')고 칭송했다. "조선독립운동의 정신, 만세!"(푸스녠, '조선독립운동의 새로운 교훈')라고 외치며 조선의 승리를 지지했으며 "과거의 타인의 권력 밑에 겁에 질려 무릎 꿇었던 민족들이 분분히 일어나서 해방을 요구할 것"(천조우주,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언')이라 기대했다. 문헌 자료는 문영걸 미도중국연구소 소장(베이징대 종교학 박사)이 중국국가도서관, 베이징대 도서관 등에서 발굴한 것으로, 그 원문과 전문 번역을 한국일보닷컴에 게재한다. 학계에서 제목과 일부 문단이 인용된 적은 있으나 원문을 포함한 전문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은 "3·1운동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찬탄과 흠모가 있었다고는 들었으나 원문 자료를 발굴함으로 그 실상을 엿볼 수 있게 돼 학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전 국사편찬위원)는 "이 자료들은 중국 현대화의 기점이라고 하는 5·4운동에 한국 3·1운동이 영향을 끼쳤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可敬可佩的朝鮮人)'은 그간 국내 학계에 제목만 전해질 뿐 전문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글이다. 베이징대 학생 리더인 쉬더헝(훗날 중국 최고 정치 자문 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역임)이 잡지 '국민' 제1권 제4호(1919년 4월호)에 추성(楚僧)이라는 필명으로 썼다. 국민 제1권 제4호는3·1운동 특집호로 발행됐는데, 3·1운동 전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민족 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을 실었다. 쉬더헝은 3·1운동에 대해 "이 얼마나 문명한 거동이고, 얼마나 위대한 정신인가!"라고 치켜세우며 "우리가 이들 조선인들에 대해 얼마나 탄복해야 마땅하며, 또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할까" 되물었다. 당시 그는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소식도 발 빠르게 알고 있었는데 "듣자 하니 현재 조선은 이미 공화국가를 세웠다고 하고, 이당휘(임정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를 잘못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사를 총통으로 선출했다고 한다"며 "참으로 우리 동아시아의 가장 통쾌한 일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를 향해서는 서슬 퍼런 비판의 언어를 쏟아냈다. 일본인들을 '가장 하등의 민족' '인류의 공적'이라 칭하며 "저 2,000만의 기개가 있는 이들(한국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겠느냐"며 "전부 죽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전 세계 모두의 눈을 속일 수 있느냐"고 추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의기양양하겠으나 20, 30년이 지난 후에는 조선에 비교할 수도 없이 뒤떨어져 있을 것"이라 꼬집었다. 일제에 영합하여 아부하는 중국인에 대해서는 "토끼가 죽으면 여우도 비참해진다"고 경고했다. 쉬더헝은 평범한 학생이 아니었다. 5월 4일 톈안먼에서 울려 퍼진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등 학생 운동 세력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3·1운동에 대한 인식은 '베이징 학생계 선언'이라 불리는 5·4운동 선언문에도 녹아들었다. "(...) 조선인들도 독립운동을 하면서 부르짖었다. '독립을 하지 못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모름지기 국가가 망하고 영토를 넘겨주어야 하는 문제가 눈앞에 닥쳐도 국민이 큰 결심을 하여 끝내 일어서지 않는다면, 이는 20세기의 열등 민족이며, 인류의 대열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발굴 문헌을 검토한 신 교수는 "당시 중국의 각 대학마다 쑨원의 중화혁명당과 비공식적으로 연계된 학생운동 조직 '학생구국회'가 생겨났는데 이 글이 실린 잡지 '국민'은 베이징대 학생구국회가 사상의 확산을 위해 펴낸 월간지"라며 "'국민' 편집실에서 학생구국회의 푸스녠, 쉬더헝 등 대학생들이 5월 2일 시위운동을 결정했는데, 어떻게 5·4운동에 3·1운동이 미친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동북공정 이후 중국은 주변국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축소해왔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2006년에 나온 중국 '세계근대현대사' 검정교과서(인민교육출판사)는 3·1운동을 서술하면서 "중국 인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으며 '신청년' 등 간행물에서 수십 편에 달하는 보도와 글이 발표됐다"면서 독립선언문도 수록했다. 이 내용은 2010년에 사용된 교과서까지는 확인된다. 현재 이 교과목은 3·1운동 내용 전체를 덜어내 일체 다루지 않는다. 우성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중국의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자국 중심 역사교과서 서술이 학생들에 미치는 파급력은 무척 크다"며 "이러한 역사 인식이 이웃한 국가와의 상호 이해와 우호 교류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만큼 중국 학계와의 공동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이번에 발굴된 원문을 번역과 함께 전체 공개합니다. 이 링크를 누르면 한국일보 닷컴으로 이동합니다. 이동이 되지 않는다면, 인터넷 브라우저 주소창에 다음 URL을 입력하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016180005710

'TV 손자병법' '만년 과장'… '무대 인생 70년' 원로 배우 오현경 별세

70년 가까이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원로 배우 오현경이 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유족에 따르면 오현경은 이날 오전 김포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식도암과 위암으로 두 차례 투병했고, 지난해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6개월 넘게 투병 생활을 해 왔다. 1936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5년 고등학교 재학 중 유치진 극작의 '사육신'으로 전국 고교생 연극경연대회를 통해 연극에 데뷔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엔 연세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졸업 후엔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으로 활동했다. '봄날', '휘가로의 결혼', '맹진사댁 경사', '3월의 눈'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한 KBS 드라마 'TV 손자병법'의 만년 과장 이장수 역으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985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2년 KBS 연기대상 대상, 2006년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2011년 서울시 문화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2013년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출됐다. 2017년 별세한 배우 윤소정이 아내다. 유족으로는 배우인 딸 오지혜, 아들 오세호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5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8년 앓은 딸을 존엄사시킨 날, 엄마와 간병인은 축제를 벌였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소녀 비(김주연, 이지혜)가 비트 강한 음악에 맞춰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로 침대 위에서 춤을 춘다. 트램펄린 위에서 뛰는 듯 높이 도약하는 비의 넘치는 에너지는 객석까지 전해져 삶의 건강한 활력을 느끼게 한다. 그런 비가 "세상에 죽는 것보다 끔찍한 게 얼마나 많은데"라며 엄마 캐서린(방은진, 강명주)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연극 '비Bea'는 병명을 알 수 없는 만성적 체력 저하 증상으로 8년 동안 침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가 존엄사를 요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베아트리체라는 이름 대신 비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그는 육체적 활동엔 제약이 있지만 정신만은 그대로이다. 연극에서 활기 넘치는 비의 모습은 실제의 비가 아닌 8년간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에 갇혀 있는 내적 자아의 모습이다. 관객은 상상이 투영된 평균 이상의 생기 넘치는 비의 내적 자아를 주로 보게 된다. 그의 실제 상태는 어눌한 발음으로 간병인에게 의존한 채 생활하는 모습을 간간이 묘사함으로써 가늠하게 한다. 비의 새로운 간병인으로 레이(강기둥, 김세환)가 온다. 어딘지 어눌하고 부산스럽고 무엇보다도 남성인 레이를 캐서린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비가 레이를 좋아하고 만족해하자 딸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레이는 누구보다 공감을 잘하고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동성애자임을 숨기려 하지만 문득문득 드러나는 그의 본성을 감출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쉬지 않고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데, 대부분 거짓말이다. 레이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은 극에 활력을 불어 넣고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가는 데 일조한다. 엘리트 변호사인 캐서린은 책임감이 강하고 엄격한 원리원칙주의자이다. 딸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그는 남편이 딸을 버리고 떠났을 때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존엄사를 원하는 딸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연극은 질문한다. '모든 행동과 욕망이 차단된 삶일지라도 살아갈 의미가 있는가.' 존엄사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믹 고든이 영국 런던에서 이 작품을 초연한 2010년 이후 여전히 논쟁적 주제이다. '인간이 죽음을 결정할 수 없다'는 종교적 논리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존엄사를 거부한다. 인간다움에 가치를 두는 이들은 단순한 생명의 연장은 의미가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이 연극은 후자의 입장에 동조한다. 비의 정신은 모든 감각이 작동하지 않는 육체에 갇혀 있다. 그런 상태를 보여주려는 듯 주요 무대인 비의 방은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했다. 비가 만든 수백 개의 귀걸이로 벽을 치장했지만 방은 어두운 감옥 같은 느낌을 준다. 방은 비의 자유로운 정신을 가두는 육체의 상징인 셈이다. 갇힌 육체 속에서 비는 맛도 성적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정신은 모든 감각을 기억하고 욕망하지만 육체의 출구는 막혀서 어떤 감각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치병은 비를 수인(囚人)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엄마 역시 수인으로 살게 한다. 캐서린은 사랑으로 딸을 지키고 보호하면서 '의무감'이라는 굳건한 감옥 속에 감금된다. 딸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캐서린은 스스로가 딸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한다. 육체의 활동을 금지하고 철저히 레이의 도움으로 일상을 지내 본 캐서린은 비의 존엄사 제안을 수락한다. 존엄사를 시행하는 날은 마침 비의 생일이다. 존엄사를 행하기 직전 가장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축제가 펼쳐진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장난, 비트 넘치는 음악과 춤과 함께 죽음은 어쩌면 가장 강렬한 삶의 에너지라는 듯 비와 캐서린, 레이는 축제를 벌인다. 비가 고통스럽게 약을 먹고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방의 벽이 사라지고 열린 공간이 드러난다. 비의 정신을 가두었던 육체가 무너진 것처럼. 연극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비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비의 결정이 고통스러운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을 선택한 것이라는 듯. 연극 '비Bea'는 오는 3월 24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유플러스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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