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확장은 계속될 것인가

서울의 확장은 계속될 것인가

입력
2023.11.13 04:30
27면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김정호의 경조오부도 '대동여지도'. 조선 후기의 한양과 성저십리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394년, 조선왕조는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결정했다. 하루아침에 나온 결정은 아니다. 고려 말부터 계속된 논의의 결과다. 천도는 착실히 진행되었다. 종묘, 사직, 궁궐을 세우고, 수도 방어를 위해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연결하는 성을 쌓았다. 한양도성이다. 앞에는 조정, 뒤에는 시장을 둔다는 '전조후시(前朝後市)'라는 전통적 도시계획론에 따라 궁궐 앞에서 종묘 앞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에 시장이 들어섰다. 지금의 종로다.

한양도성 안은 동서남북중 5부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다. 양반들은 경복궁 서쪽의 서촌과 동쪽의 북촌을 선호했다. 서촌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대궐을 지으려다 그만두는 바람에 빈 땅이 되었다. 집 없는 사람들이 자리 잡으면서 차차 슬럼화되었다. 결국 북촌이 최고의 거주지로 부상했다. 북촌의 호적을 조사하면 양반이 절반 이상이었다. 북촌은 한양의 강남이었다.

한양도성에 둘러싸인 도심은 지금의 종로구와 중구 일부에 불과했지만, 한양도성 주변 10리까지는 한성부에 속했다.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한다. 지금의 성북구,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동대문구, 성동구까지다. 한양 전체 인구의 5% 정도였던 성저십리 거주민은 한양의 발전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40%까지 폭증했다.

거주민이 늘어나자 주거문제가 심각해졌다. 관청별로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직업별, 계층별 집단 거주지가 생겼다. 그래도 살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도로를 침범하고 국유지를 잠식해서 집을 짓고 살았다. 강북 골목이 비뚤비뚤해진 이유다. 범죄도 급증했다. 조선 후기 한양의 범죄율은 타 지역의 6배, 절도사건은 30배에 달했다. 큰돈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경제사범이 활개쳤다. 하지만 높은 범죄율도 한양으로 몰리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지금의 서울은 현대에 와서 확장을 거듭한 결과다. 일제강점기에 영등포구, 해방 이후 은평구, 강북구 전역과 동작구, 구로구, 광진구, 송파구 일부가 포함되면서 서울은 순식간에 두 배로 늘어났다. 서울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기서 다시 두 배가 늘어나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기하급수적 확장이다.

김포가 서울에 편입되면 서울의 면적은 50% 가까이 늘어난다. 인접한 다른 시군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니, 서울은 다시 한번 '복붙'을 거듭할지도 모르겠다. 졸속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선거와 별개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당은 선거 이슈 선점했다고 좋아할 것 없다. 그 여파가 전국으로 퍼져 결국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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