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지닌 진주만의 '신화'

미국인들이 지닌 진주만의 '신화'

입력
2023.12.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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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진주만 공습과 '에토로후 긴급발진'

1941년 12월 일제 진주만 공습으로 검은 연기에 휩싸인 미국 전함 애리조나호 모습. 위키피디아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12.7) 80주년이던 2021년 12월 시사주간지 타임은 저 사건에 대한 미국인들의 3가지 ‘신화(그릇된 믿음)’를 보도했다.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신화, 분노한 미국인들의 자원 입대가 이어졌다는 신화, 당시 일본 제독(아마모토 이소로쿠)이 “잠자던 거인을 깨웠다”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신화.

당연히 2차 세계대전은 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됐다. 앞서 31년 일본이 만주를, 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건 미국의 2차 대전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분노한 청년들이 모병소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의무 징집됐고, 그것도 공습 전인 1940년 가을부터였다. 공습 당시 미군 징집병은 이미 200만 명에 달했고, 주요 공장들 역시 전시 체제로 전환해 있었다.

미국이 ‘잠든’ 거인도 아니었다. 루스벨트 정부는 일본이 중국을 침공한 직후부터 석유와 철강 등 전략물자 대일 금수조치와 미국 내 일본 금융자산도 동결함으로써 일본과 경제전쟁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필리핀 미 주둔지 등에 대한 일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타임’이 언급하지 않은 또 하나의 신화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일본의 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의회 반대를 잠재우고 참전 명분을 얻기 위해 사실상 방치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다수가 믿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400여 함재기를 탑재한 일본 연합함대는 진주만 미 해군 당국의 정찰을 피해 당시 전장이던 태평양 남서 해역이 아닌 북쪽 항로로 우회했고, 무전까지 통제하며 수개월간 극비리에 도상-실전훈련을 벌였다. 주력 함대가 은밀히 결집해 있던 기지가 전후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 섬이었다. ‘경관의 피’를 쓴 일본 작가 사사키 조는 저 음모론을 모티브 삼아 양국의 격렬한 첩보전을 그린 소설 ‘에토로후발 긴급전’을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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