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차량 발견 뒤 30분도 안 돼… '증발'한 여대생의 20년 미스터리

2024.04.19 04:30

2004년 2월 9일 오후 7시~7시 30분쯤(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州) 하버힐의 112번 국도. 스쿨버스 운전기사 부치 앳우드는 버스를 몰고 집으로 가다 사고가 난 차량을 보게 됐다. 눈길에 미끄러져 나무와 충돌한 검은색 소형 승용차였다. 운전자로 보이는 20대 초반 여성은 길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추위에 떨고 있길래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러나 여성은 “보험사와 이미 통화했다”며 사양했다. 심지어 “경찰을 부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좀 의아했지만 일단 앳우드는 현장을 떠났다. 당시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 간호학과 3학년이었던 21세 여성, 마우라 머레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순간이었다. 올해로 실종 20년, 머레이는 말 그대로 ‘증발’했다. 이때 이후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사용 기록도 없다. 의도적 잠적인지, 납치돼 살해당한 것인지, 아니면 사고 후 주변을 헤매다 길을 잃고 조난당해 숨졌는지, 지금도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증거보다는 정황과 추측에 근거한 시나리오만 무성할 뿐이다. 대부분 미제 사건이 그렇듯, 실종 당시 상황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귀가한 앳우드 및 사고 지점 근처에 살던 다른 주민으로부터 사고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그날 오후 7시 46분. 목격 시점 기준으로 한참 후도 아니었는데 머레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헤드라이트와 앞유리 등이 파손된 차량만 방치돼 있었고, 내부에는 술 몇 병과 화장품만 남아 있었다. 운전석 주위에 붉은 얼룩이 있어 혈흔인가 싶었으나 레드 와인 자국으로 판명됐다. 실제 차 안에선 술 냄새도 났다. 경찰은 그가 술김에 도로 옆 숲으로 들어갔을 수 있다고 보고 주변을 살폈지만 발자국 하나 없었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게다가 머레이는 보험사에 연락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튿날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자 2월 11일 오전부터 본격 수색·수사에 착수했다. 교통 사고에서 실종 사건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고 지점 반경 800m 범위를 샅샅이 훑었고, 헬리콥터까지 동원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납치됐다면 있을 법한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대신 언론만 잔뜩 몰려들었다. 지역 방송사부터 인근 대도시인 보스턴의 매체, 급기야 CNN방송 등 전국 단위 언론사도 취재에 나섰다. ‘마우라 머레이 실종 사건’은 미국 전역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머레이의 ‘2월 9일’은 마치 누군가에 쫓기듯, 긴박하고도 의문투성이인 하루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날 새벽, 머레이는 컴퓨터로 매사추세츠주 버크셔, 북쪽 버몬트주 벌링턴으로 가는 길을 검색했다. 오후 1시에는 남자친구이자 현역 군인인 빌 로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메시지 받았어. 그런데 솔직히 누구와도 많이 얘기하고 싶진 않아. 그래도 오늘 꼭 전화할게. 사랑해.” 뒤이어 뉴햄프셔주 바틀릿에 있는 콘도에 전화를 걸어 방을 빌릴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는 로시에게 ‘나중에 얘기하자’는 음성 메시지(오후 2시 18분)를 보냈지만 통화를 하진 않았고, 해당 콘도를 예약하지도 않았다. 오후 1시 24분에는 지도교수에게 ‘가족이 세상을 떠나서 일주일간 학교에 못 나온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 사망한 가족은 없었다. 오후 3시 30분 자신의 차를 몰고 캠퍼스를 나선 머레이는 현금 280달러를 인출했고, 보드카와 와인 등 4병의 술(40달러 상당)을 샀다. 계좌에 있던 돈을 거의 전부 빼낸 데다, 평소 술을 즐기지도 않았다는 점에 비춰 심상치 않은 행동이었다. 현금인출기(ATM)와 주류 판매점의 폐쇄회로(CC)TV 2개를 확인한 결과, 동행한 사람도 없었다. 애머스트를 떠난 시간은 오후 4~5시로 추정됐다. 그리고 3시간 후쯤, 그는 거주지로부터 210㎞ 떨어진 마을에서 행방불명 상태가 됐다. 정황상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머레이에게 ①커다란 심경 변화가 있었고 ②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떠나려 했으며 ③음주운전을 했는데 사고가 나자 두려워 보험사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가설이 옳다 해도 ‘20년 실종의 직접적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아버지인 프레드 머레이는 “딸이 갑자기 (일부러) 사라질 이유가 없다. 좋은 일만 있었다. 곧 간호사가 될 예정이었고, 새 차를 구입하게 됐으며, (그해 여름) 결혼도 앞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는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2004년 늦가을 무렵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머레이를 찾자’는 목소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분출했다. 인터넷 게시판이었다. 범죄 관련 정보나 소식, 대책 등을 다루는 여러 웹사이트에서 머레이 실종 사건이 집중 논의됐고, 아예 이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는 신규 사이트도 속속 탄생했다. 온라인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한데 모이자 누리꾼들의 관심과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에서 ‘DIY(Do-It-Yoursef·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탐정’ 또는 ‘시민 수사관’으로 불리는, 한국식 표현으로는 ‘네티즌 수사대’인 집단 지성 출현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실제로 머레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여기에서 찾는 평가도 적지 않다. 월간지 보스턴매거진은 2014년 2월 기사에서 “머레이가 사라진 날, 유튜브(2005년 2월 개설)와 트위터(2006년 3월 개설)는 없었고 페이스북은 출범 5일째였다”며 “당시가 소셜미디어 초창기였다는 점에서, 머레이 사건 역사는 ‘온라인 추적’의 진화를 보여 주는 우화”라고 짚었다. 주간지 피플도 2017년 9월 “머레이의 실종 이야기는 인터넷 전체에 퍼져 격렬한 소문과 음모는 물론, 언론의 사실 기반 보도를 촉발했다”며 “소셜미디어 시대의 첫 번째 범죄 미스터리”라고 진단했다. 다만 긍정적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머레이 실종 딱 8년 후인 2012년 2월 9일, 유튜브에 ‘112dirtbag’이라는 계정 사용자가 올린 동영상 2건이 대표적이다. 차량 안에서 112번 국도(머레이 실종 장소)를 비추고 있는 영상, 그리고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1분간 기괴한 웃음소리만 낸 뒤 마지막에 ‘Happy Anniversary(기념일 축하해)’라는 자막을 띄우는 영상이었다. 이후엔 아예 △콘도 티켓 사진에 ‘마우라 머레이’라는 제목을 입힌 영상 △‘No Hope for Mental Wannabe’라는, 문법은 틀리지만 ‘희망은 없다(No Hope)’라는 문구와 함께 괴이한 음악·그림을 담은 영상 등도 게시됐다.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머레이는 이미 살해됐다고 봐야 한다’, ‘시신 암매장 장소를 암시한 게 아니냐’, ‘범인이 머레이와 그 가족을 조롱하고 있다’는 해석들이 나왔다. 달리 말하면 사건 해결의 단서로도 비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았다. 영상 게시자는 ‘알든 올슨’이라는 남성이었는데, 정신질환자였다. 경찰도 올슨을 소환 조사했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저 관심을 끌려는 의도로 기이한 영상을 업로드한 것이라는 게 경찰 판단이었다. 수사에 혼선만 빚은 꼴이 됐다. 이뿐이 아니다. 머레이 가족에 대한 모욕이나 욕설, 공격도 사회적 관심도에 비례해 늘어났다. 친척인 헬레나는 “그들(네티즌)이 온라인에서 (머레이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보는 것은 정말 끔찍하고 슬프다”며 ‘시민의 수사’는 단점이 장점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신상 털기·여론 재판’ 논란이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지금, 사건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민의 참여’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올해 초 머레이 실종 20년을 맞아 미 연방수사국(FBI)과 뉴햄프셔주 법무부 미제사건팀, 주 경찰은 그의 ‘41세(생존 가정 시) 예상 모습’ 사진을 제작한 뒤, 이를 공개하며 시민들의 적극적 제보를 요청했다. 2월 5일 ‘미디어 프레셔’라는 이름의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언니 줄리 머레이는 ‘답’을 찾고 싶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목표는 마우라를 찾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누군가의 기억을 되새기며, 대중이 이 실종된 여성에 대해 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속보] "이스라엘 미사일, 이란 내 장소 타격" 미국 ABC방송 보도

이스라엘 미사일이 이란 본토를 타격했다고 18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이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13, 14일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300여 기의 미사일·무인기(드론)를 발사한 데 따른 보복 공격이다. ABC는 "이스라엘 미사일이 이란의 한 장소를 타격했다고 미국 당국자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란 외에 시리아나 이라크 등도 공격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이와 관련, 미국 CNN방송도 이란 중부 이스파한주(州) 북서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이란 파스통신을 인용해 전했다. 폭발의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스파한에는 3개의 원자로와 함께 이란 최대 핵 관련 연구소인 이스파한 원자력기술센터(INTC)가 들어서 있다.

[속보] "이란, 폭발음 들린 이스파한서 방공시스템 가동"

이란 중부 이스파한 공항 인근에서 19일(현지시간) 폭발음이 들린 가운데, 이란 당국자가 이 지역의 방공 시스템이 가동됐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현재까지 폭발음의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란 국영 언론은 이날 이스파한과 시라즈, 테헤란 등 상공 비행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최소 8편의 민간 항공기가 우회 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파한에는 원자로 3개와 함께 이란 최대 핵 관련 연구소인 이스파한 원자력기술센터(INTC)가 위치해 있다. 미 CNN방송은 “폭발음이 들린 곳은 이란 육군항공대 기지 근처”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미국 ABC방송은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 시설을 미사일로 타격했다고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18일(미국 시간) 보도했다. 이란이 13, 14일 미사일·무인기(드론) 300여 기를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 엿새 만의 보복 작전으로 보인다.

유학생? 스파이?…남중국해 온 중국인 4600명 정체는

필리핀에 때아닌 ‘스파이’ 논란이 일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필리핀과 중국 간 물리적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갈등의 최전선, 그것도 미군 기지 인근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 수천 명이 몰려온 까닭이다. 군 당국은 이들이 감시·염탐 활동을 위해 학생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18일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최근 중국 학생 4,600여 명이 루손섬 카가얀주(州) 투게가라오시(市) 한 사립대에 등록한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 프란셀 마가레스 파디야 필리핀군 대변인은 “중국 학생 증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로 했다”며 “경찰, 이민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대학 내 외국 학생 입학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장소와 시점 모두 공교롭다. 루손섬은 대만에서 400㎞ 떨어진 필리핀 최북단에 위치했다. 지난해 2월 필리핀·미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 조약에 따라 미군이 배치된 군사 기지 4곳 중 3곳이 이 섬에 있으며, 이 중 2곳(카밀로 오아시스 해군기지, 랄로 국제공항)이 카가얀주에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커지는 시점에,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 교두보 한복판에 중국 청년이 대거 몰려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필리핀 정부가 판단한 셈이다. 또 다른 의심 정황도 잇따른다. 현지 매체 폴리티코는 “중국 학생들이 머무는 곳은 카가얀주 군사 기지 인근”이라고 전했다. 카가얀 출신 국방분석가 체스터 카발자 필리핀대 교수는 일간 인콰이어러에 “학생들이 학위 취득을 위해 200만 페소(약 4,800만 원)를 지불했지만, 일부는 수업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들이 ‘더 큰 목적’을 갖고 필리핀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하원의원은 17일 국회 차원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필리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중국 유학생에게 더 엄격한 비자 발급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지 주정부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발한다. 친중파로 여겨지는 마누엘 맘바 카가얀 주지사는 “중국 학생들은 학생 비자와 필리핀 외교부가 발급한 적법한 서류를 갖췄다”며 “중국과 카가얀 고등 교육기관이 체결한 파트너십을 통해 공부 기회를 얻은 이들”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또 “학생들을 중국 영토 분쟁과 연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분쟁이 격화하면서 필리핀에선 군사 관련 시설이나 조직에 중국인이 근무하는 데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남중국해를 순찰하는 필리핀 해양경비대 산하 보조대에 중국인 36명이 2, 3년간 보조요원으로 소속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인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