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22개 최다 메달' 처음으로 일본 앞질러... 6일간 새역사 쓴 한국 수영

2023.09.30 10:35

한국 수영의 ‘르네상스’가 활짝 열렸다. 과거 박태환이 홀로 이끌던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22개(금 6, 은 6, 동 10개)의 역대 최다 메달을 수확했다. 14개 종목에서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다. 29일 여자 혼계영 400m 결선을 끝으로 41개의 금메달이 걸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경영 일정이 모두 종료된 가운데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총 1개의 금메달을 따는 등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한국 수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부흥을 알렸다. 이번 대회 한국 수영 경영은 무려 22개(금 6, 은 6, 동 10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2006년 도하 대회의 16개(금 3, 은 2, 동 11개)보다 6개나 많다. 한국 수영 경영이 '아시안게임 최고 성과를 올린 대회'로 기억했던 2010년 광저우 대회(금4, 은 3, 동 6개)보다 금메달도 2개 많았다. 사실상 박태환이 메달 레이스를 주도했던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와 달리 이번 항저우에서는 황선우를 주축으로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온 점도 의미가 크다. 출전한 계영 6개 종목에서 모두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메달을 따는 등 무려 14종목에서 한국 기록을 작성한 점도 고무적이다. 특히 아시안게임이 1951년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일본보다 많은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총 메달 수에서는 22개로 일본(30개)보다 적었지만, 금메달은 6개로 일본(5개)보다 1개 많았다. 중국과 일본이 1982년 뉴델리 대회부터 줄곧 '경영 2강'을 형성했는데 한국이 이를 깨트렸다. 간판 황선우는 가장 많은 6개(금 2·은 2·동 2)의 메달을 목에 걸었고, 고교생 국가대표 이은지도 5개(은 1·동 4)의 메달을 수확했다. 김우민(금 3·은 1), 이호준(금 1·은 2·동 1), 이주호, 최동열(이상 은 2·동 2)도 나란히 4개의 메달을 거머쥐었다. 황선우는 2관왕(남자 자유형 200m·계영 800m), 김우민은 3관왕(남자 자유형 400m·800m·계영 800m)에 오르며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최초로 2명의 수영 다관왕을 배출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3관왕이 된 김우민은 '전설' 최윤희(1982년 뉴델리), 박태환(2006년 도하·2010년 광저우)에 이어 3번째 수영 3관왕에 등극했다. 한국 수영은 오랜만에 의미 있는 기록도 작성했다. 여자 배영 100m와 200m에서 동메달을 딴 이은지는 1986년 서울 대회의 최윤희(100·200m) 이후 처음으로 단일 대회에서 여자 배영 메달 2개를 목에 건 선수가 됐다. 무려 37년 만에 경사다. 황선우는 2010년 광저우 대회의 박태환 이후 처음으로 남자 자유형 200m 금메달을 가져왔다. 또한 역대 2번째 자유형 100m 메달리스트도 됐다. 특히 자유형 200m에서는 황선우가 1위, 이호준이 3위에 올라 겹경사를 누렸다. 한국 남자 수영 사상 단일 종목에서 2명의 선수가 메달을 딴 것은 2002년 부산 대회 자유형 1500m 조성모(은메달)과 한규철(동메달) 이후 21년 만이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한국이 약세를 보이던 단거리 종목에서 의미 있는 금메달이 나왔다. 지유찬은 남자 자유형 50m 예선에서 21초84의 한국신기록, 대회 신기록을 써내더니 결선에서 이를 21초72로 줄이며 '깜짝 금메달'을 일궜다. 2002년 부산 대회의 김민석(공동 1위) 이후 21년 만에 남자 자유형 50m 우승이다. 백인철도 접영 50m에서 예선과 결선에서 거푸 한국기록과 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백인철은 1998년 방콕 대회 여자 접영 200m 금메달을 획득한 조희연에 이어 2번째 아시안게임 접영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수영으로 범위를 좁히면 백인철이 사상 첫 대업을 달성했다. 기록도 많이 쏟아냈다. 남자 계영 800m는 7분01초73을 기록, 아시아신기록을 세웠다. 남자 자유형 50m 지유찬(21초72), 남자 자유형 200m 황선우(1분44초40), 남자 자유형 800m 김우민(7분46초03), 남자 접영 50m 백인철(23초29) 등이 아시안게임 대회 기록을 새롭게 수립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기는 등 한국 수영의 역사를 바꾼 박태환이 은퇴한 후 한국 수영은 잠시 암흑기를 보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 결승에 오르는 한국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아시안게임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박태환이 도핑 위반 징계로 나서지 못한 2014년 인천 대회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김서영(경북도청)이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수확한 것이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안방에서 열린 2019년 광주 세계선수권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한수영연맹은 부활을 꾀하고자 2019년 말부터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독려했다. 이전에 한국 선수들이 잘 나서지 않던 쇼트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선수단을 파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은 국제대회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고, 경험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강자들과 대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앴다. 각자 기량이 성장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 것도 한국 경영 부활의 원동력이 됐다. 이번에 아시안게임 역대 최고 성적을 합작한 주역들 대부분이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황선우는 2003년생, 김우민은 2001년생이다. 이은지(방산고) 등 아직 고교생인 선수들도 있다. 한국 수영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부흥을 알렸지만 이제 막 출발선에서 발을 뗐을 뿐이다. 가야 할 길이 있고, 더 높이 올라야 할 고지가 있다. 당장 도전해야 할 큰 무대가 있는데 내년 2월에 열리는 도하 세계선수권과 7월에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이다. 한국 수영은 최근 올림픽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12명의 선수가 19개 종목에 출전한 도쿄 올림픽에선 황선우만이 자유형 100m와 200m 결선 무대를 밟았을 뿐이다. 그러나 2년 사이에 한국 수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황선우가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2회 연속 세계선수권 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우민도 이 두 대회에서 모두 자유형 400m 결선에 올랐다. 여기에 이호준은 황선우와 함께 자유형 200m 결선까지 진출, 세계선수권 단일 종목 동반 결선 진출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남자 계영 800m '드림팀'은 2년 동안 크게 도약했다.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한국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기어코 7분01초73의 아시아 기록을 세우며 아시안게임 단체전 첫 금메달의 역사를 썼다.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남자 계영 800m 3위에 오른 호주의 기록은 7분02초13이었다. 드림팀이 세계선수권 메달을 노릴 수준만큼 올라온 셈이다. 동료에게 자극받아 함께 높은 곳으로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했던 선수들은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됐다. 출전한 평영 4차례 레이스에서 모두 한국 기록을 경신한 최동열은 "내 한계가 어디인지 보고 싶다"며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에 도전하고 싶다. 지금의 기세를 이어간다면 결승을 넘어 메달권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우민 역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모두 메달을 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와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6위, 5위를 기록한 김우민은 한 계단씩 올라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세계선수권은 올림픽을 점검하는 마지막 무대다. (지난 두 번의 세계선수권에서) 6위, 5위를 헀으니 내년 대회에서는 3위를 하겠다. 그리고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전했다. 한국 수영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박태환이 남자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은메달을 딴 뒤로는 올림픽 메달이 끊겼다. 금메달로 범위를 좁히면 박태환이 안긴 2008년 베이징 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이 유일하다. 박태환 이후 누구도 따내지 못한 올림픽 입상이지만, 황선우와 황금세대라면 파리 올림픽 경영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황선우는 "역대 최고 성적을 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 수영은 성장하고 있고, 계속 기량이 올라오는 선수들도 많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오락 잘한다고 동네 형한테 맞기도" 결국 금메달 딴 김관우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잘하는 편이었어요.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계속 이긴다는 이유로 형들에게 끌려가서 혼나기도 했죠."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김관우(44)는 29일 기자회견에서 어린 시절 오락실의 추억을 떠올렸다. 오락실을 유해 장소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오락실에 갔다가 들키면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혼나기 일쑤였고, 오락실에선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동네 형들에게 맞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았던 열정은 그를 결국 금메달로 이끌었다. 김관우는 이날 중국 항저우 시내 한 호텔에 마련된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에서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게임을 잘했던 분들은 그런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동네에서 맞아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며 "옆구리를 맞아도 기술 콤보를 넣는 데 손을 놓지 않았던 의지와 승부욕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이라는 결실을 맺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스포츠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다. '스트리트파이터5'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관우는 전날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7전4승제)에서 대만의 샹위린을 4-3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의 첫 e스포츠 금메달이다.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5가)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고 했을 때, 도전적으로 참가했다. 최선을 다해 선발전에서 우승해 국가대표가 됐을 때도 체감이 안 됐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오기 전에 힘들게 훈련했다. 정말 오래 했던 게임임에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아시안게임에서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결국 아시아 정상에 오른 김관우는 어린 시절 자신을 걱정하며 나무랐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경기를) 찾아보기 힘드신 연세다. 다른 분이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어머니 아시는 분이 '거기 아들 금메달 땄다'고 연락을 주신 것 같다. 어머니께서 약간 어설픈, 어렵게 친 것 같은 문자로 '너무 좋다. 기쁘다'고 해주셨다"며 기뻐했다.

박태환 이후 13년 만 수영 3관왕... 김우민 "빨리 올림픽 가고 싶다"

중장거리 간판 김우민(22·강원도청)이 한국 수영 역사상 세 번째로 단일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박태환(2006년 도하·2010년 광저우) 이후 13년 만이다. 김우민은 "수영의 레전드들과 (제 이름이) 같이 불리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면서도 "(박태환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은) 수영선수로서 당연한 목표이고, 앞으로 해내야 할 숙제"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김우민은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경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4초36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그의 레이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압도적이었다. 첫 50m 구간을 25초19로 주파하면서 선두로 나선 김우민은 이후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계속 2위 판잔러(중국)와 격차를 계속 벌렸다. 이 대회 남자 계영 800m, 자유형 800m에서도 금메달을 따낸 김우민은 이로써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수영에서 아시안게임 3관왕이 나온 최윤희(1982년 뉴델리 대회), 박태환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최초로 남자 자유형 400m·800m에서 동시에 우승하는 새 기록도 작성했다. 이 두 종목을 모두 우승한 선수는 지금까지 쑨양(중국)과 김우민, 두 명뿐이다. 금메달을 목에 건 김우민은 "첫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달성하게 돼 기쁘다"며 "아시안게임이 1년 미뤄져서 준비에 힘들었는데, 저의 첫 아시안게임이어서 잘 마무리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시안게임 3관왕이라는 기록으로 박태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데 대해선 "같이 이름이 불리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면서도 "그만큼 제가 더 잘해야 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 대한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김우빈은 "제 기록을 단축하지 못해서 아쉽다"며 "내년 파리에선 조금 더 좋은 기록으로 메달권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림픽에 나가면 더욱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을 하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빨리 올림픽에서 경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리에선 400m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우민은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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