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스냅샷이 아니다

입력
2022.11.22 22:00
27면

나는 항상 새해에 그해 목표들을 거창하게 세우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너무 거창해서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감을 미리 느끼고 있으면서도, '절반이라도 성공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하고 위안했다. 5, 6월쯤 되면 그 목표의 목록 중에 몇 개나 지키고 있는지를 살펴보다가 이내 다 포기해버리고 마는 식이었다.

올해 연말이 다가오며, 마음을 바꿔 먹었다. 연초의 1년 계획보다 연말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생을 스냅샷이 아니라 계주라고 생각하니, '포기해 버릴 것이 아니라 내년의 나에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나의 모습으로 바통을 건네겠다'라는 다짐이 들었다.

삶은 프레임이 이어지는 영상이다. 개중 일부 스냅샷이 별로라고 해서, 그 삶을 아름답지 않다고 실망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해마다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의 나에게 바통을 건네고, 내년의 내가 절박하지 않게 달릴 수 있도록 현재의 내가 좀 더 잘 달려 보는 것이다.

'테세우스의 배'를 이야기하고 싶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의 청년들을 구출해 돌아온다.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한다. 오랜 기간 보존하며 삭은 널빤지를 새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판자 조각이 다른 것으로 바뀐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만약 원래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조각으로 교체된다면, 그 배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사실 인간도 7년을 주기로 모든 세포가 변화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7년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테세우스의 배와는 달리 인간의 삶은 단절 없이 소멸과 생성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새 널빤지로 교체하더라도 우리는 명백히 동일한 사람이다. 그 어떤 의구심 없이 내년의 내가 필사적이고 절박하게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애쓰지 않도록,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믿음직한 내년의 내 손에 무사히 바통을 쥐어 주면 우리의 소명은 다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올해의 내가 넘어지더라도, 내년의 내가 더 열심히 달려 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단절 없는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포기나 실패가 아니다. 그저 잠깐의 이탈과 부진일 뿐이다. 그러니 주저앉아 있는 대신 늦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된다.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나는 내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 같은 일로 여겨졌다. 이 기적은 금세 일상으로 변모하고 말지만, 일상을 좀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로 내 모습을 실시간 촬영하고 있다고 상상했을 때, 그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기록이니 말이다. 그러니 올해의 나는 올해까지만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내가 이 계주를 달리는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응원하고 싶다. 또 내년 내후년에도 과거의 내게 환호받을 수 있도록 우선 올해를 잘 완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눠서 달려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올해 완주하지 못했더라도 믿음직한 내년의 나는 분명 잘 달려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좀 더 수월할 수 있도록 연말에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