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 '합법' 대마밭, 알고 보니 '불법' 대마초 공급 온상

입력
2022.09.04 14:28
수정
2022.09.04 15: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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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야산서 대마 재배 허가받아 불법 유통
경찰, 대마초 30㎏ 압수... 9만7000명 흡연
1년 두 차례 형식적 점검 시스템 허점 노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경북 한 야산에서 재배 중인 대마초를 압수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경북 한 야산에서 재배 중인 대마초를 압수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선후배 사이인 A씨와 B씨는 2019년부터 경북 지역 3,006㎡ 규모의 야산에서 대마를 길렀다. 지방자치단체에는 “대마 종자를 채취하겠다”고 신고했고 허가도 받았다. 현행법상 대마 종자와 뿌리, 성숙한 줄기는 환각 성분이 없어 지자체장이 허가하면 재배할 수 있다. 다만 ①파종기인 5월과 수확기인 11월에 재배면적과 생산 현황, 수량 등을 지자체에 보고하고 ②마약으로 만들 수 있는 잎 등은 공무원 참관 아래 폐기해야 한다. 이들은 그해 말 대마종자 5㎏을 수확한 후 대마 잎은 폐기하는 등 처음에는 관리ㆍ감독을 잘 따랐다.

하지만 검은 속내는 금세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마약 전과가 있는 A씨는 매년 두 차례의 점검만으로는 지자체가 실제 대마 재배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챘다. 지자체 점검 전 대마초 약 30㎏을 미리 수확해 빼돌린 뒤 “큰돈을 벌자”며 B씨를 꾀었다. 대마 재배지에서 일하던 주부 2명도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트위터, 텔레그램 등에 대마초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고, 1㎏ 량의 대마가 수도권 일대로 팔려 나갔다. 대마초 구매자에게는 직접 제조한 전자담배용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무상으로 끼워주는 판촉 마케팅도 했다. A씨 일당은 이런 식으로 7개월간 1억 원을 가로챘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경북 한 야산에서 압수한 대마 건초. 서울경찰청 제공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경북 한 야산에서 압수한 대마 건초. 서울경찰청 제공

범행은 경찰이 대마초 흡연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꼬리가 밟혔다. 대마초 사범이 “직접 재배한 대마초를 유통하는 일당이 있다”고 실토한 것이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4일 일당 4명과 이를 매수ㆍ흡연한 구매자 13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주범 A씨 등 2명은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대마초는 통상 실내 비닐하우스나 빌라에서 은밀히 재배하고 판매한다”면서 “허가를 받아 재배한 대마를 불법적으로, 대규모로 유통한 건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압수한 대마초는 총 29.3㎏(29억 원 상당). 이는 지난해 전체 대마 압수량(49.4㎏)의 절반으로, 9만7,000명(1회 0.3g 기준)이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양이다. 또 함께 압수한 대마 691주로는 적어도 10㎏의 대마초를 만들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대마 재배 허가 후 감독시스템이 허술한 허점을 파고들었다”며 “파종과 수확할 때만 생산현황, 수량 등을 점검해 그사이 실제 재배량을 파악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도 개선 필요성을 통보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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