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영국 신문 인수? 안 돼!" '금지법' 칼 빼든 영국

입력
2024.03.14 16:00
수정
2024.03.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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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래프' 인수 놓고 언론 자유 논란
"아랍 인수하면 반유대주의 비판 못해"
영국 정부 "신문·시사잡지 소유 막겠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지난 1월 영국 런던의 한 매장에 진열돼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지난 1월 영국 런던의 한 매장에 진열돼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영국 유력지 텔레그래프 인수를 시도하던 아랍에미리트(UAE) 측이 암초를 만났다. 영국 정부가 13일(현지시간) "외국 정부의 신문사 소유를 막겠다"고 제동을 걸면서다. 외국의 권력 기관이 자국 언론을 통제하게 되면 언론 자유가 크게 침해되리라는 우려에 정부가 나선 것이다.

이날 영국 가디언·BBC방송 등에 따르면, 스티브 파킨슨 문화부 장관은 외국 정부기관의 자국 신문사·시사 잡지사 소유를 막는 법안 도입을 예고했다. 개인적으로 자산을 투자하는 외국 정부 관료도 제한 대상이며, 방송사는 규정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법안은 이르면 19일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파킨슨 장관은 외국 기관 지분으로 허용되는 금액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며 "다른 법률에서 지배 지분으로 간주하는 기준은 25%"라고 설명했다.

영국 신문들이 12일 런던의 한 상점에 진열돼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신문들이 12일 런던의 한 상점에 진열돼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 펀드가 영국 보수지 인수 논란

이는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사가 UAE 측에 인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셰이크 만수르 아랍에미리트 부통령이 75%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아부다비 합작 투자사 레드버드 IMI는 영국 텔레그래프 미디어 그룹을 6억 파운드(약 1조100억 원)에 인수하고자 추진해 왔다. 텔레그래프 미디어 그룹은 일간 '텔레그래프'와 주간 '선데이 텔레그래프', 주간 '스펙테이터' 등을 갖고 있다.

이 중 보수 성향 일간지인 텔레그래프는 17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유력 매체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이 신문은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도미닉 커밍스 전 보좌관이 텔레그래프를 자신의 '진짜 상사'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집권여당인 보수당 소속 티나 스토웰 상원의원은 "(영국) 정부가 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일(언론 소유·통제)을 외국 정부가 하도록 승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제1야당 노동당 역시 영국 정부가 발표할 개정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여야 정치인, 언론인 등 반대

텔레그래프의 전 부편집장 베로니카 워들리도 인수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신문사를 사려는 사람은 누구나 사회, 정치인, 정부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고 모든 소유자가 (보도에) 간섭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이 이슬람 테러리즘(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할 권리를 과감하게 옹호해 왔고, 런던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며 "어떤 아랍계 소유자도 자신이 가진 언론사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친팔레스타인,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텔레그래프는 "앤드루 닐 스펙테이터 회장도 정부의 발표에 지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닐 회장은 레드버드 IMI의 입찰을 두고 "끝이거나, 적어도 끝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며 "(정부의 규제는) 매우 올바른 방향의 움직임이며 정부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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