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집에서 지은 장석주·박연준의 시집...아내는 즐거웠고 남편은 절망했다

입력
2024.05.01 17:00
수정
2024.05.01 17: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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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 208번·209번 낸
시인 부부 장석주·박연준 인터뷰

장석주(왼쪽) 박연준 시인 부부가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에 위치한 카페에서 각각 5년 만에 내놓은 자신의 시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장석주(왼쪽) 박연준 시인 부부가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에 위치한 카페에서 각각 5년 만에 내놓은 자신의 시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부부는 장마철이면 맹꽁이 소리가 들리는 경기 파주의 집에서 함께 시를 썼다. 아내는 어느 때보다 “즐겁게”, 남편은 “절망하면서.” 최근 문학동네 시인선 208번(장석주 ‘꿈속에서 우는 사람’)과 209번(박연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낸 장석주(69)·박연준(44) 시인의 이야기다.

1975년과 2004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시인으로 등단한 두 사람은 대학교 사제지간에서 연인이 됐고, 그렇게 10년이 흘러 2015년 함께 쓴 책(‘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을 내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며 부부가 됐다. 또다시 10년이 흘러 결혼 10년 차가 된 부부를 지난달 24일 파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필연인가, 우연인가...시집 쪽수까지 같은 부부의 시집

두 시인 모두 5년 만에 시집을 냈고 시집 쪽수까지 164쪽으로 같다. ‘필연 같은 우연’으로 맞아떨어진 시집 출간이었지만, 시를 쓰는 과정만큼은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슬픔에 푹 젖어 있어야 시가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박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시를 쓰는 과정은 ‘해방구’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청탁을 받지 않아 지켜야 하는 마감이나 의무감 없이 “그냥 내 마음이 달려갈 때 일어나는 빛, 그런 에너지를 이번 시집에 많이 담았다”는 것. 그렇기에 “이번 시집을 내고는 기분이 마냥 좋았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이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시의 카페에서 신작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장석주 시인이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시의 카페에서 신작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같은 질문에 장 시인은 “이번 내 시집의 초고를 보고 ‘이 정도밖에 못 쓰나’라는 절망과 ‘출판해도 될까’라는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평소 자신을 ‘문장 노동자’로 소개할 정도로 다작하는 그는 누구보다 시를 쓰는 ‘스킬’을 많이 가졌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시 열 편, 스무 편을 그냥 쓸 수 있지만 그런 기술과 힘을 다 빼고 쓰려니 힘들었다”는 것. 장 시인은 초고부터 4교까지, 교정쇄가 나올 때마다 시를 끝까지 고쳐야만 했다.

장 시인은 “모든 습과 벽을 버리고 시를 처음 썼던 15세 소년의 마음”으로 썼다. 등단 초기 그를 향한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가 30년 만에 다시 등장한 이유다. 이번 시집 속 낭만은 “삶을 경험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슬픔 한 점 없이 살았다면 파렴치한,/장년기를 넘긴 채 세월의 나이테를 더듬는다”(‘게르와 급류’)는 문장처럼.

박연준 시인이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에 관해 말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박연준 시인이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에 관해 말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시인하다’)라는 박 시인의 시는 바깥의 ‘작은 존재’들에게 닿았다. 그는 “이르게 등단해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절에는 삶이 어렵고 혼란하고 괴롭기만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내면을 치열하고 혹독하게 파고들던 박 시인의 시선은 이번 시집에서 “이제부터//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고 선언할 정도로 나아갔다. 최근 시집 낭독회에서 독자로부터 오래전부터 그의 시를 읽어왔는데, 시 속 화자가 건강해진 것 같아서 기뻤다는 말을 들었다는 박 시인은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시는 불가침 영역...쓰면서 서로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박연준(왼쪽) 시인이 자신의 시집을 읽는 장석주 시인을 바라보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박연준(왼쪽) 시인이 자신의 시집을 읽는 장석주 시인을 바라보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부부는 평소 산문과 소설, 교양서 등 여러 글을 쓰며 서로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시만큼은 예외다. 박 시인은 “시는 불가침 영역처럼 둔다”며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부부의 시집에서는 서로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장 시인은 “삶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카메오처럼 (시에 서로) 등장한다”고 전했다.

박 시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장 시인은 “박 시인 시집 반응이 좋다”고 애정이 묻어나는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내 시집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오고 보니 ‘쓰고 싶은 만큼 썼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부부는 작업을 하겠다면서 함께 카페에 남았다.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다고 입을 모으는 두 사람이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는 일만큼은 일심동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앞으로도 “이렇게 팔리지도 않는 시들을 한 장, 한 장, 또 한 장 모아서 묶어내는”(박연준) 시인, “허무한 숭고에 자기를 던지는 존재”(장석주)인 시인이라는 길을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함께 걸을 것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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