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과 한일관계

입력
2024.05.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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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델리=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델리=사진공동취재단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24일 워싱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평가하며 한일관계 개선에 따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한미일 공조 강화를 강조한 것이다. 인태 지역에서의 대중 견제 전략을 감안할 때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일 정상에 대한 공치사였다.

□대통령실은 이튿날 캠벨 발언을 언론에 공지했다. 그러나 윤 정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렸던 4·10 총선 직후인 탓에 여론은 싸늘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맹국인 미국의 부장관이 립서비스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인데, (대통령실이) 현실인 양 착각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일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언론 기사에도 "예전엔 그런 식의 립서비스를 기뻐했지만 지금은 (일본인의) 인식이 변했다" 등의 비판이 많았다.

□동맹국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신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준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일본에 추천을 타진했으며 아베 총리가 이를 수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본 여론은 들끓었다. 입헌민주당은 "국가 차원에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고, '아베 총리, 농담이죠'(마이니치신문) '대미 추종이 지나치다'(아사히신문) 등 언론 사설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제3자 변제 방식의 양보안을 제시했다. 여론의 반대에도 한일관계 복원의 물꼬를 트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최근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우방국 민간 기업인 네이버에 현지 법인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 국가가 외국 투자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캠벨 발언을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대통령실이 먼저 홍보할 정도로 야단을 떨 이유도 없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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