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로 상처 ‘셀프 치료’ 한 오랑우탄… “야생동물 첫 관찰 사례”

입력
2024.05.03 12:00
수정
2024.05.0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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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구팀 "약초 씹더니 얼굴 상처에 발라"
5일 후 상처 아물더니, 한 달 안에 완전 치유
"의도적 치료... 인간·유인원 공통 조상 기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사는 수컷 오랑우탄 '라쿠스'의 얼굴 오른쪽 눈 아래에 큰 상처가 나 있다(왼쪽 사진). 라쿠스는 약초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했는데, 두 달 후쯤 해당 상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치유됐다. AP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사는 수컷 오랑우탄 '라쿠스'의 얼굴 오른쪽 눈 아래에 큰 상처가 나 있다(왼쪽 사진). 라쿠스는 약초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했는데, 두 달 후쯤 해당 상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치유됐다. AP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야생 오랑우탄이 약초를 이용해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관찰됐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비롯된 야생동물의 ‘적극적 자가 치료’ 행동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MPIAB) 이자벨 로머 박사팀은 이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리포트에 이 같은 내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앞서 △약용 식물을 씹는 오랑우탄 또는 원숭이 △곤충을 잡아 상처 자국에 문지르는 침팬지 등이 포착된 적은 있으나, 야생동물이 ‘약초를 활용해’ 부상 부위를 치료하는 모습이 목격된 것은 첫 사례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셀프 치료’의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 남부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 사는 수컷 수마트라 오랑우탄 ‘라쿠스’다. 연구팀은 1980년대 후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라쿠스가 2022년 6월 얼굴 오른쪽 눈 아래에 큰 상처를 입은 사실을 포착했다. 사흘 후 라쿠스는 ‘아카르 쿠닝’이라는 약초를 씹어서 나온 즙을 7분간 다친 부위에 계속 발랐고, 으깬 잎을 상처 전체가 덮이도록 바르더니 30분 이상 약초를 먹었다. 그리고 닷새 후부터 상처가 아물었고, 한 달 안에 완전히 치유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아카르 쿠닝은 항균·항염증 등 성분이 들어 있는 약초로, 진통·해열·항암 효과가 있다. 전통의학에서 이질, 당뇨병, 말라리아 등 치료에 쓰인다. 연구팀은 “라쿠스의 행동에 비춰 의도적으로 얼굴 상처를 치료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스스로 알아냈는지, 다른 오랑우탄에게 배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상처 치료에 필요한 인지 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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