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허훈, 26년 전 투혼의 준우승팀 MVP 허재 소환

입력
2024.05.06 14:54
수정
2024.05.06 1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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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허훈(왼쪽)이 5일 경기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5차전에서 KCC 허웅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KT 허훈(왼쪽)이 5일 경기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5차전에서 KCC 허웅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만 한 아우는 없었지만 불굴의 정신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리 근육에 미세 손상이 있는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이 말이 아닌데도 1초도 쉬지 않고 코트를 누볐다. 26년 전 성치 않은 몸으로 눈부신 투혼을 발휘했던 아버지처럼 아들도 있는 힘을 모두 짜냈다.

‘형제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은 지난 5일 형 허웅(부산 KCC)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허웅은 팀 우승을 이끌며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영예도 안았다. '농구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허재가 1997~98시즌에 받았던 상을 허웅이 대를 이어 수상했다.

동생 허훈(수원 KT)은 비록 준우승으로 마쳤지만 형보다 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2차전부터 마지막 5차전까지 계속 40분 풀타임을 뛰었고, 챔프전 5경기 평균 26.6점 6어시스트를 찍었다. 감기 몸살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26년 전 아버지의 활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원맨쇼를 펼쳤다. 그 결과, 허훈은 기자단 MVP 투표에서 21표나 받았다. 1위 허웅과는 10표 차다. 준우승 팀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표가 나온 것.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이래 준우승팀에서 플레이오프 MVP를 받은 건 허재가 유일하다. 1997~98시즌 당시 허재(부산 기아)는 대전 현대와 챔프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승4패 준우승을 차지했다. 7경기 평균 39분33초를 뛰며 23.0점 6.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당시 허재는 오른 손등을 다쳐 붕대를 감고, 경기 중 충돌로 눈 주위에 피가 흘러 반창고를 붙이고 뛰는 투혼을 불살랐다. 허재의 당시 경기 장면은 지금도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동생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형은 동생이 얼마나 힘든 상태에서 뛰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허웅은 “동생하고 링거를 같이 맞았다”며 “기침을 많이 해서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더라. 많이 아파해서 안쓰러웠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경기장에 오면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동생의 모습에 나도 감동했다”며 “농구에 대한 진심을 보며 나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챔프전 무대를 경험한 허훈은 이제 다음 시즌 대권에 재도전한다. 이번 시즌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시즌 중간에 합류해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지만 2024~25시즌은 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하고 몸 상태도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시즌 후 얻게 되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전망이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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