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해임' 통보받은 사찰 부주지… 법원 "부당 해고"

입력
2024.06.09 14:07
수정
2024.06.09 16: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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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관계 인정받아 '노동자'로 규정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교 재단법인 소유 사찰에서 주지(住持)를 보좌하는 부주지(副住持)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또 법원은 사찰 부주지에게 서면이 아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해임을 통보한 것 역시 해고 절차를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최수진)는 불교 A재단법인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B씨는 A재단 소유 사찰에서 부주지로서 사찰 행정업무 등을 수행하다, 2022년 문자메시지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 재단의 퇴거명령에 응하지 않고, 욕설을 하는 등 스님으로서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였다. B씨는 이를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서울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B씨를 근로자로 판단하면서 지노위 결정을 뒤집자, A재단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역시 B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부주지인 B씨를 근로자로 인정했다. 부주지는 주지를 도와 사찰 관리·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등 업무가 상당 부분 정해져 있었고, A재단도 사찰 방문과 재정 관리를 통해 B씨의 업무를 관리·감독을 했다. 회사에 종속된 관계로 일한 경우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A재단은 B씨에게 매달 준 돈을 임금이 아닌 보시금(재물을 베푸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물리쳤다. 재판부는 "B씨가 부주지로서 사찰 관리·행정 업무 등을 수행한 이상 해당 금원은 아무 이유 없이 지급된 것이 아니라 업무수행에 대한 대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문자메시지로 해임 통보를 한 것 역시 해고사유 서면 통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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