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어린 딸 남기고 북한군 막다 전사한 경찰관… 74년 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2024.06.27 17: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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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경찰서 故 김명손 경사]
다섯 배 넘는 적과 전투 중 숨져
현충원 안장, 유가족 "기적 같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김명손 경사. 국방부 제공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김명손 경사. 국방부 제공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라."

이 말을 끝으로 가족들의 곁을 떠난 경찰관이 74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6·25전쟁 초기 남쪽으로 내려오던 북한군 정예와 싸우다 전사한 아버지는 긴 세월이 지나서야 영면에 들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딸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지만 "이제라도 아버지를 찾으니 기적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청은 27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김명손 경사의 안장식을 거행했다. 유가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 경사의 유해는 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경찰은 선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이 광주 자택에서 출발해 귀가할 때까지 동행하며 예를 갖췄다.

김 경사는 전남 보성경찰서 소속으로 1950년 7월 23, 24일 전남 영광군에서 벌어진 '영광삼학리전투'에서 북한군 6사단과의 전투 중 전사했다. 27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당시 국군과 경찰 200명과 함께 진지를 구축하고 1,000명이 넘는 적 1개 대대와 격전을 벌였다. 50여 명이 전사했지만, 북한군 정예의 남하 속도를 늦추면서 낙동강 서부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개전 초기에는 국군 숫자가 현저히 부족했던 탓에 김 경사를 비롯한 많은 경찰관이 다수의 북한군 남하 저지 작전에 참가했다.

경찰청은 27일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명손 경사의 유해안장식을 거행했다. 경찰청 제공

경찰청은 27일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명손 경사의 유해안장식을 거행했다. 경찰청 제공

사실 김 경사의 유해를 찾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2007년 '삼학리 야산에 북한군과 전투 중 전사한 경찰관 유해가 다수 매장돼 있다'는 제보를 토대로 발굴에 나섰다. 당시 30여 구의 유해를 수습했는데, 김 경사의 딸인 김송자(79)씨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마음에 보건소에 유전자(DNA) 검사 시료를 제공, 70년이 넘어서야 재회가 성사됐다. 유가족들은 "유해를 찾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6·25전쟁 당시 전사한 경찰관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초에는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30년 이상 근무한 경찰관에게 국립호국원 안장 자격이 부여됐다. 경찰 관계자는 "국방부의 유해발굴사업에 적극 협조하는 등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다 장렬히 산화한 경찰관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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